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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1.8.30

지기유 2021. 8. 31. 00:33

군대에서 있었던 일을 써 볼까 한다.
나는 2018년 8월 입대 후 2020년 3월까지의 군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은 순탄지가 않았는데, 내성적이고 행동도 굼뜬 편이라 잘 적응하지 못했었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했고, 가끔은 부대원과 마찰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전역했다.

내 군생활은 철저히 실패했다.

이러한 군 생활에도 추억은 있다. 2018년 9월, 훈련소 수료를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기 전 닷새정도 모르는 훈련병과 지내는 과정이 있었다. (보충중대 개념) 훈련소에서 잘 지내나 싶었는데, 수료 후 뿔뿔이 흩어져 눈 앞에는 모르는 사람들만 있었다. 소극적인 성격 탓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고 자잘한 실수도 많이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내 옆자리에 있는 훈련병이 나를 도와주고, 알려주고, 말도 걸어줬다. 훈련소에 있을 때 나를 본 적 있다고, 기억이 난다면서. 근무도 같이 서고 청소고 같이 했다. 군생활에서 거의 유일하게, 내게 나쁜 감정을 가지지 않고 내게 살갑게 다가와준 사람이다. 힘든 상황에서, 짧은 순간이였지만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애석하게도, 닷새가 지난 후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자대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헤어지고 말았다.
그 뒤로 자대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지치고 힘이 들 때, 그 훈련병이 자꾸 머리속에 떠올랐다. 이렇게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서, 그 분은 내게 뭐라고 말해줬을까… 같은 부대였다면 어떤 사이였을까… 하고. 그 분이 줬던 위로는 군생활 내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역하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최근에 정말 우연찮은 기회로 그분의 인스타를 찾았다. 사실 프로필 사진은 없고 이름만 있던 계정이라 혹시나 했지만, 큰 맘 먹고 다이렉트 메시지를 넣어 봤더니, 정말 그분이였다.
3년만이였다. 그분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였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기억해주셨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부분도 기억해주고 계셨다. 자리를 빌려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감사인사를 했다. 그분은 그땐 다 도와야 하는 시기였고,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3년전과 마찬가지로, 그분은 한없이 착하고 상냥하셨다. 갑작스런 연락에 당황했을법도 한데 그런 기색 없이 편안히 대화를 이끌어주셨다.
깊이 있는 대화는 아니였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3년간의 묵은 한을 푼 느낌이였다. 한편으론 한순간의 기억으로 남에게 위로를 주고, 그리움을 줄 수 있는 그분의 온기를 가슴속에 되새기며, 나 개인으로서 이뤄내야 할 일을 위해 노력하자는 다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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