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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여행이란 것

지기유 2020. 8. 6. 00:09

본의 아니게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열흘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여행이다.

거창한 곳을 다녀온 건 아니고, 한적한 시골에 있는 별장에 친구들끼리 다녀왔다. 친구들 모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피곤해 하는 타입이라 들어가기 전에 장을 잔뜩 봐 놓고 이틀동안 안에서만 놀자는 이야기.

암튼, 재미있게 놀다 왔다. 안에 있으면서 요리도 해 먹고, 이런저런 수다도 떨고 게임도 하고. 친구 한명이 휴대용 마이크를 가져와 돌려가며 노래도 불렀다. 도중에 먹을 것이 떨어져 다시 사러 읍내에 다녀오느라 택시비가 깨지긴 했지만, 우리의 흥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였다. 역시 사람은 차가 있어야 살아가기 편하다.

언젠가 친구들이랑 같이 살게 되면 마음도 통하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생각을 단념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친하지만, 살아 온 길이 너무나도 다른 하나의 인격체이다. 성격이 비슷비슷하다거나,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모든 게 똑같을 수 없는 일. 나 스스로도 그동안 친구들과 닮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여행 1일차부터 나와는 다른 게 온 몸으로 느껴졌다. 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좋아하는 음식, 씻는 시간, 우선순위, 경제관념 등등... 하나하나 사소한 곳에서 부터 엇나갔다. 때로는 이 차이따문에 싸움이 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잘 넘겼다.

어쨌든, 친구는 적당한 거리를 둬야 비로소 친구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기로는 친한 친구끼리 동반입대를 했다가 의견차이가 나서 사이가 틀어진 채 남남으로 전역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너무 가까워져 으르렁거리게 된다면, 서로의 거리를 확인하고, 적당히 떨어져 서로의 입장을 처음부터 이해해 나가야 한다.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가위로 끊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매듭이 되어버릴테니까.



친구들과 멀어지는 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싫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운 것도 싫다. 지금처럼 그냥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인간관계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로 남고 싶다. 따로, 때로는 같이 지내며 앞으로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