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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다

지기유 2020. 9. 27. 20:49
중, 고등학교 6년을 보낸 모교

어제는 근 두달만에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냈다. 두달동안 못봤으니, 얼굴이나 보고 밥이나 먹자는 이유. 번화한 시내에 있는 피자집에 가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서로의 근황, 실없는 게임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딱히 하는 게 없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 편해지는 친구들이다.
밥을 다 먹고는, 살 책이 있어 서점에 들렀다. 소설책 한권을 사들곤 밖으로 나왔다. 자, 이제 뭘하지? 처음엔 코인노래방이나 피시방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뭐, 솔직히 말해 내 또래 남자애들에 갈 곳이 그곳밖에 더 있을까... 하지만 이번엔 사양했다.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코로나19 감염이 발목을 잡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간 끝에, 나온 결론은 ‘산책’ 이였다. 매일 걷던 거리가 새로울 게 뭐 있겠냐만은 이날은 특별히 다른 곳을 가 보기로 했다. 시내에서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나, 그리고 친구들의 모교.
걷고 걷기를 10여분, 모교가 눈에 보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학교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우리가 썼던 교실 근처도 둘러보고, 운동장도 바라보며 우리가 있었던 장면을 상상했다. 어디를 가던 추억이 묻어 있었고, 우리는 기억 속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추억들을 깨워 몇십분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벌써 10년이 다 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기억하고 있고, 애틋함을 알고 있다. 익숙했던 친구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실 내 성격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학창시절엔 이 성격 때문에 왕따를 당했다. 괴롭혀도 아무말 못하고 대꾸도 못하니 노는애들 사이에선 괴롭히기 딱 좋은 아이, 그 외 다른 아이들한테는 엮이면 같이 맞을 아이. 딱 그 정도였다. 지금 친구들은 이때 나에게 다가와 줬다. 큰 괴롭힘을 당했던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또 어떤 괴롭힘을 당할까 걱정하면서 중2를 맞았다.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 때, 친구들이 다가와줬다. 친구들이 아니였다면 중2, 중3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나는 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친구들은 내게 소중한 존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감정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조차 안나고, 언젠가부터 너무나도 익숙해져 그저 무던하게 지냈다. 그러던 와중에 이날의 경험을 하게됬다. 그저 산책을 하면서 모교에 들러 수다만 떨었을 뿐인데, 중2 때 느꼈던 감정들이 역류하며 내게 다시 느껴졌다. 잊고 지냈고, 구석에 처박아둬 먼지가 쌓인듯한 오랜 감정들이 내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도, 그 감정이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언젠가 이 블로그에, 추억에 젖어살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분명 그 또한 사실이지만, 적당한 추억의 감정은 내게 살아갈 활력소를 준다. 삶이 무기력해지고 의미를 잃어 갈 때 쯤, 이런 경험을 함으로서 다시 달릴 힘을 얻었다. 이 날을 계기로, 나는 나대로 나만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한편, 친구들이 만들어 갈 미래도 응원해주면서 오랜 우정을 유지해 나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됬다. 우연찮은 이유로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됬다. 바쁘게 달리다가도, 가끔 친구들과 만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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