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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

성역에 맞서는 태국의 민중들

지기유 2020. 10. 19. 23:01

 

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된 ‘세손가락 경례’

태국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민은 뒷전이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버린 태국 국왕에게 민중들이 분노하고 있다.
태국 국왕인 라마 10세는 세금을 낭비하며 사치와 향락에 빠진 것도 모자라, 국가권력을 자신에게 모으려고 하고 있다. 2014년 쿠데타를 허용한 이유 또한, 왕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내각을 실각시키기 위함이였으니. 현재 쁘라윳 짠오차 총리 또한 왕실의 하수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태국은 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이다. 이는 영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태국은 이들 나라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국왕의 권한이 막강하다. 왕실 모욕은 태국 내에서 큰 처벌을 받는 죄이고, 한해에만 한화로 3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쓰고 있으며,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서슬퍼런 왕의 횡포 아래에서, 국민들은 벌벌 떨며 침묵하고 있다는 것. 이번 민주화 운동은 그 ‘성역’ 을 깨버린 첫 단추이다. 말한마디 못하면 잡혀가고, 예를 갖추지 않았다며 잡아가는 횡포를 무릎쓰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할말은 하고, 썩어빠진 군주제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한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사임도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박정희, 전두환 등 두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두명의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내가 곧 나라이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반역자, 곧 빨갱이가 됬다. 이들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고,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해야 했다. 그때, 우리는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민중의 힘이 독재자를 끌어 내릴 수 있다고 믿었고, 이는 곧 현실이 됬다. 6월의 뜨거운 뙤양볕 아래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 를 외쳤고, 이윽고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태국의 민주화는 행동하는 시민들, 그리고 그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냐가 관건인 듯 한데, 한가지 불안한 점이 있다. 바로 ‘세대간의 갈등’ 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태국의 중장년층은 슬기로웠던 국왕이 태국을 발전시켜줬다는 향수에 빠져있다. 실제로 푸미폰 전임 국왕은 주변국가들의 공산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태국을 지켰으며, 쿠데타를 호통 한번으로 진압하는 등 카리스마도 겸비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가 그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 카리스마 넘치던 국왕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해 시들어가는 모습만 봤으며, 그가 죽고 새로 즉위한 국왕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는 모습만을 봐왔으니 이미지가 좋을 리 있나. 이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전 세대의 공감대를 얻어야 민주화 운동은 성공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정부의 강경진압에 무너져 흐지부지되고 끝날지, 그것들을 넘어서 새로운 민주정부가 출범하게 될지는, 태국 민주화 세력들의 행동과 의지에 달려 있다.

평화적인 민주주의가 정착한 한국에서는 이 자유가 당연한 듯 하지만, 의외로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는 나라는 많지 않다. 공산독재국가 중국, 북한. 그리고 민주주의인 척 하지만 사실은 푸틴 독재체제인 러시아. 그리고 대안이 없어 스스로 장기집권을 택한 일본까지. 정권교체가 활발히 일어나고, 국민의 손으로 한 정권의 막을 내릴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는 민중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다. 나는 태국 민중의 힘을 믿는다. 부당한 군부독재에 무릎을 꿇지 말고, 원하는 민주정부를 평화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길. 한국에서 빌어본다.